경주 최부자집 육훈, 부자가 존경받는 이유

By | 2017년 8월 2일

경주에는 많은 역사적 유물들이 있지만, 근/현대에 엄청난 부를 이룩한 최부자집이 있습니다. 지금은 일부만 남아 있지만, 장장 9대에 걸쳐 그 부를 유지했으니 대단한 집안임에 틀림없습니다. 게다가 조선 시대가 끝나가는 어지러운 세상에서도 그 부를 들고 있었으니, 과연 어떤 집안이었길래 그랬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부가 끝나게 되는지도요.

<경주 최부자집 육훈, 부자가 존경받는 이유>

경주 최부자집

이 집안에는 여섯 가지 가훈이 있었습니다. 이 가훈만 보게 되더라도 왜 존경받는 부자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육훈 *
1.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2.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3.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4.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5. 주변 100리 안에 굶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6. 시집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재산을 지킴에 소홀히 하지 않고, 권력에 눈이 멀지 않겠다는 소리입니다. 이 당시 당쟁이 심했기에 말단 벼슬만 하면 자칫 휘말릴 일이 없었던 것이지요.

흉년에 싸게 땅을 사들이게 되면 다시 풍년이 되었을 때 판 사람이 자신의 땅을 뺏겼다 생각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상도를 벗어나지 않는 최부자집이라 볼 수 있습니다.

혼자 잘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대의 사람들이 굶지 않게 보살펴주고, 나그네에도 인심을 쓰니… 각종 민란이 일어났어도 이 집만큼은 살아남을만 했습니다.

* 존경받아 마땅한 최부자집
장장 9대에 걸쳐 만석꾼 집안이었지만, 이 ‘부’가 끝나게 된 건 다름 아닌 독립운동 때문이었습니다. 최준(1884 ~ 1970) 선생은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쓰이게 했고, 그로 인해 모진 고문도 당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의 아픔에 모른척하지 않고 과감히 자신의 부를 민족의 독립에 쓰게 했지요.

그리고, 이 이후의 전 재산은 지금의 영남대학교인 대구대학교 재단에 모두 기부했다고 합니다. 평소 교육사업에 뜻을 둔 최준선생의 의지입니다.

존경받는 부자. 경주 최부자집은 그럴만했고, 그리고 역사에서 길이길이 되뇌어질 이유가 있는 집이라 생각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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